[기자회견] 체르노빌 핵사고 35주기, 방사능의 공포는 계속된다.

2021년 4월 26일 | 기후에너지, 보도자료/성명서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북서부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초기 대응 과정에서 사망했고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사망사례는 계속 이어졌다. 인접 지역에서는 갑상선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이 어린 아이들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35년이 지난 지금도 핵발전소 반경 30km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로부터 25년 후 또 한 번의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본 동북부 해안 후쿠시마에서 발생했다. 올해로 10년이 되었지만 해체할 엄두조차 내지 못 하는 핵발전소에는 빗물과 지하수가 유입되어 계속 오염되고 있다. 오염된 지하수와 원자로 내부를 식히기 위해 투입된 물이 하루 140t씩 쌓이면서 현재 약 125만t의 방사능 오염수를 보관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희석해 30년간 방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이번 해양방류 결정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환영, 미국은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결정이 ‘국제 관행’에 부합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핵발전소를 가진 나라들은 온갖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려왔고 우리나라도 동해에 버린 기록이 남아있다. 관련한 국제법들이 만들어지며 이전과 같은 방식의 핵폐기물 해양투기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다만 자국 연안에 방사성 물질을 방류하는 것은 별도 규정이 없어 핵시설의 오염수 방류는 전 세계적으로 이어져 왔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관행적으로 버려온 방사능 오염수와 핵연료의 세슘이나 스트론튬 등이 포함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수를 버려왔다는 사실 앞에서는 우리도 결코 떳떳하지 못한 입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해양방류보다 100~200배 가량 많은 비용이 든다는 고체화 등의 처리방식을 선택하라고 일본 정부에 강제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검토를 지시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더 많은 삼중수소 오염수를 우리 앞바다에 버려왔던 입장에서 일본의 논리에 제대로 반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은 리터당 4만 베크렐까지는 바다에 버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삼중수소의 경우 리터당 1500 베크렐 이하로 낮춰 방류하겠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버리는 것보다 30분 1 농도로 낮추겠다는 것이고, 1년 동안 우리가 버리는 삼중수소의 총량이 일본이 30년 동안 나눠 버리겠다는 연간 배출량보다 훨씬 많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본이 한국의 월성핵발전소 등에서 배출되는 삼중수소 오염수를 문제 삼아 본인들의 논리를 합리화해온 것도 그런 이유다. 일본 정부에 대한 정보공개 요청 역시 표리부동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원안위는 우리 국민들에게 핵발전소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왔던가. 우리도 하지 않는 일을 다른 나라 정부에 요구한다면 상대가 순순히 응할 것인지 자문해보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IAEA가 제시한 절차를 따른다면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반대하기 어려운 우리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발언취지를 번복하기는 했으나 핵발전을 유지하는 이상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다. 각국 정부와 핵산업계는 핵발전소에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방사성 물질 누출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핵시설에서는 끊임없이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고 있다. 핵발전소가 안전하다 말하려면 방사능 오염수도 안전하고, 결국 감당 못할 핵폐기물에 대해서도 안전하다고 말해야 한다. 이전보다 더 위험한 방사능 누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안전기준과 국제적 관행을 바꿔 ‘기준치 내에서’ 안전한 것으로 조정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함께 더 위험하고 더 불안한 세상을 만드는 길을 계속 따라가야만 한다.

35년 전 체르노빌 핵사고의 원인은 핵발전소 자체의 구조적 결함에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사고 이전까지 구소련 측은 체르노빌 핵발전소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핵발전소라고 홍보했다. 적극적인 핵발전 정책을 추진하던 그들이 내건 슬로건은 ‘안전한 원자력’이었다. 핵발전소는 그 때도 안전하지 않았고 지금도 안전하지 않다. 핵발전을 멈추지 않는 한 방사능의 공포 역시 멈추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앞으로 태어날 생명들에게 그 영향이 계속 이어진다.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체르노빌 핵사고 때문에 유전 질환과 장애에 고통받다 짧은 생을 마친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더 위험하고 불안한 세상을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물려줄 권리가 지금 우리에게 있는가.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류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모두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우리 앞바다부터 지키자. 방사능 오염수 해양투기를 막을 자격, 아이들의 미래를 말할 자격, 세상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할 자격 있는 나라가 되자. 탈핵국가로 가는 길을 앞당기자.

  1. 4. 26.

탈핵부산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