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록문: 원시자연이 살아있는 생태계의 보고

2003년 2월 21일 | 활동소식



















김은정/부산녹색연합




두만강 접경지역이자 3개의 자연보호구가 위치하고 있는 연해주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소련붕괴와 재정악화, 공동화 현상으로 인한 지역 주민의 무력감은 밀렵과 남획을 부채질하여 자연보호구의 생태계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WWF-러시아는 지방정부, 지역주민, 관련 이익집단과 함께 생태관광을 시도하고 있다. 「2002 생태교육자 러시아 탐방 프로그램」은 이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모니터링이었으며, 이와 함께 광활한 지역에 걸쳐 원시 자연이 살아 숨쉬는 생태계의 보고를 견학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전국에서 선발된 12명의 활동가들은 5월 21일부터 25일까지 야생의 땅, 러시아 연해주 자연보전지구를 탐사했다.

<한국의 귀한 야생화가 아무리 흔해도 남루한 지역주민과 폐허를 감출 수는 없다>
차가운 아침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회색항, 러시아 자루비노항으로 들어오면서 우리의 탐사는 시작되었다.
바다로 길게 나와 있는 가모브(Gamov)반도의 작은 만 비차스의 울창한 숲속에 우리의 숙소가 있다. 군용트럭을 개조한 WWF의 산악용버스를 타고 항구를 벗어나면서부터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절경과 투명한 해안, 야생화들은 이곳이 야생의 땅, 연해주, 자연보전지구임을 실감하게 했다. 가모브반도는 아열대식물의 북방한계선이다.


    <그림1. 비처스베이 전경>


  너무나 색이 고운 철쭉을 만날 수 있는 최북단이며, 멸종위기에 처한 아무르표범의 서식지도 이곳이 경계라고 한다. 가모브 등대 주변의 해안은 강한 태풍으로 인해 토양의 침식이 심해 키 큰 나무보다는 관목과 다년생풀들로 바람에 넘실거린다. 이곳을 지나던 수많은 배들은 태풍으로 인해 난파되어 바다속에 수장되었는데 최근에 일부가 발견되고 있다. 해안 절벽과 바위틈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야생화들이 이곳에서는 넓은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는 흔한 들꽃에 불과하다.
더덕향을 따라 걸어가는 오솔길엔 은방울꽃, 꿩의다리, 바이칼바람꽃이 길을 일러주고,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 해안엔 두루미풀, 노랑원추리, 각시붓꽃 군락이 색을 더해준다. 그리고 습지에서 만난 화려한 조름나물 군락. 그러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곳 프리모스키 지역주민의 공황을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50%가 넘는다는 지역 주민의 실직율은 민가 어디서나 드러난다. 정돈되지 않은 마을 주변, 쉽게 볼 수 있는 폐가, 남루한 옷차림들, 넘치는 고철더미와 쓰레기들.  
붕괴되어 가는 농어촌의 모습은 한국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림2. 가모브 등대 전경>                  <그림3. 가모브 등대 해안의 야생화>


  이를 더하는 냉전의 잔해들. 이곳은 과거 극동 군사지역의 거점이었다. 2차대전시 침몰한 포경선은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고, 곳곳에 남아있는 벙커와 대형포, 군사시설은 소련붕괴 전·후의 변화를 소리없이 알려주고 있다. 특히 숙소가 있는 비처스만의 대형돔은 돌고래, 물범과 같은 해양동물의 군사작전 훈련소로 유명하였으며, 인명살상과 지형파악 등의 실전에 활용했다고 한다.

<바다새와 물범의 서식처, 철저한 보전과 밀렵의 갈등>
해양보호구는 섬에의 상륙 자체를 금지하고 있으며, 선상에서만 관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또한 레인저들이 밀렵감시를 위해 2명씩 교대로 보름에서 20일씩 주요 섬의 기지에서 숙식하면서 감시활동을 전개한다. 그럼에도 밀렵에 의한 생태계파괴가 심각한데, 특히 주요 소비국인 중국을 대상으로한 대게와 해삼이 남획되고 있다고 한다. 첨단화되는 밀렵꾼에 대항하는 러시아 레인져의 활동은 부족한 재정과 인력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림4. 바위 위에 물범과 바다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가무브반도 동쪽에 위치한 해양보호구를 비가 오는 불안한 일기에도 불구하고 떠났다. 세시간여를 무료하게 항해해서 만난 물범의 눈동자는 무료함, 불안감, 추위 등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맑고 푸른 바다를 닮은 눈과 마주친 우리는 호기심으로 서로가 목을 빼고 쳐다보았다. 그들에게 우리는 자연의 이방인으로 보였을까, 또 다른 한 종의 동물로 보였을까? 해양보호구의 상징은 아무래도 물범인 것 같다. 물범이 노는 바위 곁 절벽에는 수많은 바다새들도 함께 둥지를 틀고 있었다. 흰눈썹바다오리의 붉은 발에 탐방객들은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했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나는 칼새의 날개짓 너머로 햇살이 어찌나 정겹던지. 바위절벽을 하얗게 만들어 놓은 검은 날개의 가마우지는 둥지마다 알을 품고 있다.
선착장을 비롯한 해안가 맑은 물속에는 성게가 지천이다. 바위틈엔 해삼도 많다. 어른 손바닥보다 큰 가리비 껍질이 많은 것도 놀랍고, 멀리서 봐도 투명한 물은 부러울 따름이다. 이곳이 한국의 해안과 다른 점은 아주 극한 상황의 해안절벽이 아니면 해송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숙소가 해안에 있고, 하루를 계속 해양에서 보낸 것에 비하면 해양생물을 좀 더 관찰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해양연구소는 지금도 연구를 진행중인데 한국의 용역연구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곳 역시 불가사리에 의한 피해가 극심해서 대처방안 마련이 큰 과제라고 한다.

<표범과 같은 자리에 서 보다>
1916년에 지정된 케드로바야파드 자연보호구는 연해주 식물상의 절반을 볼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서 극동표범의 유일한 자연서식지이다. 신갈나무가 주종인 한국과 비슷해 보이는 숲은 그러나 훨씬 역동적이다. 사슴길을 따라 걸으면 물 마시는 휴식처가 나타나고 곳곳에 야생동물의 흔적이 있다. 목청을 먹기 위해 백년이상 된 느릅나무 밑둥을 구멍낸 곰(그림5. 아래), 나무 높이 120-140㎝에 오줌을 눈 흔적에서 호랑이의 냄새도 맡아보고, 자연보호구에서 만난 맹독의 까치살모사는 반가움을 더해 준다. 극동표범은 겹겹이 쌓인 산들 너머로 습지가 이어지는 광경을 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표범이 쉬었다는 앞이 툭 트인 산 중턱 평지에 섰을 때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엄격한 밀렵금지는 물론 허용된 사냥에서조차 사냥개에 의한 사냥은 금지하는 세심한 배려와 철저한 원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과 함께 WWF-러시아는 중국과의 협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