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을 풀며

2003년 3월 25일 | 활동소식





시청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삼십팔일이 지났습니다.
26층의 높다란 현대건물 앞에 초라하게 쳐진 텐트속에서 한철을 보내면서
저는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저는 동네 어귀의 시냇가에서 장어를 잡으러 발목을 적시고 헤매던 아이였으며,
하늘 높이 나르는 나비였으며,
부드러운 땅 속을 기어다니는 땅강아지 였습니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저는 꿈과 추억으로만 다가오는 이 작은 생명들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소음을 견디어 냈습니다.

불과 20년전만 해도 우리 국토는 따뜻하고 공기는 투명하고 물은 맑았습니다.
얼마전 이 곳 시청 앞에서 피부병 투성이의 쥐 한 마리를 보았는데
바로 그 피부병 투성이의 쥐가 미래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습니다.
누구도 아니라고 하지 못하는 시점에 와 있으면서,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슬픈 산하의 모습을
저는 이곳에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허리를 자르고
이제는 그 심장부를 가르고 가도록
늙은 노모처럼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묵언해 있는 저 말없는 산은
이제 자신이 안고 잇는 많은 생명체를 안고 울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하면
그 울음소리와 그 울음의 의미를
누구나 가슴속에 느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산이 아프다는 것을
산이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2003. 3. 14
지율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