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건 가재] 부산지역대 모의재판

2004년 10월 1일 | 공지사항

소송 건 가재] 부산지역대 모의재판
개발 반대 … 가재 ‘행복 추구권’ 주장

‘도롱뇽소송’을 주제로 한 모의재판이 대학생들의 주최로 열리기로 해 화제다. 국책사업 환경논쟁의 중심에 선 이 말 많은(?) 소송에 대해 과연 모의재판부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부산지역 법대생 모임 ‘에코의 진자’가 오는 23일 열릴 일명 ‘가재소송’을 앞두고 마지막 연습을 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법정에 선 가재

‘원고 가재 출석하셨습니까?’ ‘원,가재가 소송이라니. 말세야 말세.’

지난 19일 오후 5시 부산교대 참빛관에서는 색다른 재판 장면이 연출됐다. ‘가재’ 한 마리가 당당하게 법정에 출두한 것. 자연의 권리 소송으로 유명한 ‘도롱뇽소송’을 빗댄 이 모의재판에서는 주인공으로 ‘가재’가 직접 등장,’우리의 생존권도 보장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왜 학생들은 ‘도롱뇽’ 대신 ‘가재’를 법정에 세운 걸까.

”도롱뇽소송’이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라 대신 다른 자연물을 생각하다 가재를 떠올렸습니다. 가재는 모의재판에 앞서 방문했던 천성산 현장에서 우리가 직접 보았던 생물이기도 하고요. 1급수 물에 사는 가재 역시 환경파괴로 인해 사라져가는 생물 중 하나라는 점이 도롱뇽과 비슷합니다.’

이번 모의재판을 연출한 ‘에코의 진자’ 남선영(22) 씨의 설명이다. 모임명 ‘에코의 진자’는 자연(에코)을 중심축으로 한 진동,반향 속에 존재하는 세계를 뜻한다. 자연을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이용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우리가 사는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고 그 사이클 속에서 살아가자는 의미다.

#천성산을 직접 보니…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들이 모의재판을 기획,연출하게 된 배경에는 천성산 살리기 대장정 ‘2004 파란’이 있다.

‘2004 파란’은 서울지역 환경동아리를 중심으로 한 전국 대학생 100여명이 지난 7월 1일부터 7박 8일간 경부고속철 2단계 구간 대구~부산을 경유하며 고속철도 건설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를 제기했던 도보순례 행사.

‘사실 저는 개발론자였거든요. 우리나라는 낙후됐으니 개발할 수 있는 건 모조리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천성산 공사현장에 직접 가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바위산을 깎고,낙석을 방지하기 위해 철심을 박고,콘크리트를 바르고. 아름다운 산이 파괴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어요.’

신성문(20)씨는 그때 ‘개발’의 이면에 숨겨진 ‘파괴’의 일면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 후 ‘2004 파란’에 참여했던 법대생들이 주축이 되어 모의재판을 기획하게 됐다.

판사 역할을 맡은 김유리(20)씨는 ‘모의재판 준비 과정을 통해 환경영향평가의 문제점 등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여러분이 배심원이라면?

이번 모의재판에서는 원고인 ‘가재’의 증언은 물론이고 교수 ‘백권위’,시민활동가 ‘나연구’,터널전문가 ‘뻥뚫어’ 등 다양한 증인들의 주장을 통해 ‘스피드고속철도’의 ‘가재산’ 구간 터널공사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하게 된다.

눈여겨 볼 점은 모의재판 ‘가재소송’ 중 실제 ‘도롱뇽소송’에서 따온 부분들도 꽤 된다는 것. 원고 측이 법정에서 증언을 해줄 전문가를 확보하지 못하자 환경다큐 제작과정에서 수많은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던 방송국 피디를 대신 증인으로 내세우는 설정 등은 항고심 2심의 상황과 거의 같다. 이는 실제 심리를 관람한 학생들이 현실성 있는 재판 진행을 위해 삽입한 장면들.

그러나 항고심의 판결은 배심원 역할을 맡은 수많은 관객들의 몫으로 돌린다.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각자 나름의 결론을 내려보라는 열린 결말이다.

실제 ‘도롱뇽소송’을 이끌고 있는 지율스님은 ‘대학생들의 참신함이 돋보인다’며 ”도롱뇽소송’ 역시 재판을 통해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재소송’은 부산교대 총학생회,부산대 법대 학생회 등의 후원으로 23일 오후 7시 부산교대 참빛관에서 열린다.

모의재판에 앞서 이날 오후 3시에는 ‘도롱뇽소송 부산 시민행동’이 같은 장소에서 발족식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

이자영기자 2young@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