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수) [논평] 부실한 방사선비상계획구역 확대 개편, 한국적 특수상황 고려한 개편에 힘썼어야.

2014년 5월 16일 | 보도자료/성명서

[논평] 부실한 방사선비상계획구역 확대 개편, 한국적 특수상황 고려한 개편에 힘썼어야.

 지난 달 30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던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8~10km에 불과한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범위를 가지고 대통령령에 머물러 있던 기존 안이 예방적보호조치구역과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으로 나뉘어 각각 반경 3~5km와 20~30km로 개편되었다.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핵사업자와 지자체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일정 범위 안에 설정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과정은 성급했고, 개편된 내용은 부족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방사능 방재대책 확대, 개편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7등급 이상의 대형 사고를 상정하지 않고 마련된 방사능 방재 대책으로 인해 인명피해가 더욱 컸었던 후쿠시마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우리의 기존 안 또한 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편안은 그 동안 애매했던 몇몇 법률적 근거를 명확히 한 것과 명시적으로 구역을 얼마간 확대한 것 외에는 큰 의미는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 동안 진행되어 왔던 여러 논의와 의견수렴 과정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시민사회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근거로 하여 방사능 방재대책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여러 사항들을 지적해 왔다. 방재 대책이나 소개기준 수립 등의 근거가 되는 원자료 공개, 전국토까지 확대된 비상계획구역의 개념, 충실한 방재 훈련,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안 명시 등이 그것이다. 원안위 또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 방사능 방재대책안을 작성하기 위해 의견수렴과정 등을 2014년 중에 계속할 것이라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그러한 과정에 앞서 법률안이 먼저 통과되고 말았다.

 내용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설정에 있어 조정의 여지를 둔 것이다. 그 동안의 핵산업자와 지자체는 방사능 방재대책 개편에 있어 예산과 인력의 부족함을 계속해서 호소해 왔다. 때문에 구역설정 과정에서 몇 가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들은 비상계획구역이 가질 수 있는 넓이의 ‘최대’보다는 ‘최소’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법률안이 실질적으로 예방적보호조치구역 3km,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 20km의 내용으로 개편된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전례를 볼 때, 최소한 예방적보호조치구역은 10km,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은 30km가 되어야 한다. 부산과 같은 대도시의 주민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도심을 포함시켜야 하므로 이러한 구역설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높은 인구밀도와 좁은 국토면적을 고려하여 전국토를 대상으로 한 방사능 재난 대비 구역이 설정되어야 함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화학적, 물리적 방법으론 독성을 낮출 방법이 없는 방사능 물질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되는 방사능 재난이 발생할 경우, 이것이 생태계로 들어가 계속해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전국토를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 몇 km로 제한된 구역 설정 조치로는 그러한 오염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 이를 위한 상시적인 재난 대응 구역을 설정하여 전국토에 걸쳐야 한다. 또한 구역의 범위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내용으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예산, 인력확보방안, 방재훈련의 시행 횟수와 정도, 방호약품 구비안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향후 시행령 등에 포함되어야 한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우리는 재난에 대한 대응이나 대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번 사고에선 사고 수습을 위한 제도와 사람,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없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배와 함께 잃었던 소중한 인명중 어느 누구도 다시 구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좁은 국토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핵발전소 밀집도를 보여주는 한국의 특성상,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영향은 특정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인적, 사회적 손실의 정도는 후쿠시마에서 확인한 바와 같다. 지척에 부산과 울산이 위치한 고리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 피해는 후쿠시마 이상일 것임이 자명하다. 더 이상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겪을 수는 없다. 모든 상황을 고려한,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신뢰할 수 있는 방사능 방재 대책의 수립이 필요하다.


탈핵지역대책위(경남, 경주, 고창, 광주, 대전, 부산, 서울, 영광, 영덕, 울산, 울진, 전남, 전북)
2014년 5월 7일